고아로 자란 이들 중에는 미련할 정도로
참을성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내가 필요할 때 원하는 만큼의 물리적, 정서적 보살핌을
받을 수 없었던 이들에겐 참는 것이 하나의 성격이 된 것입니다.
영화감독 출신의 아버지 때문에
‘대학에 가서야 다른 친구들 집에 영사기가 없다는 걸 알았다’는
누군가처럼 남들도 다 그렇겠거니.. 생각합니다.
남들이라면 수술을 받아야 할 만큼 다급한 상황에 비로소
'병원을 가봐야 하나'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지나친 인내심은 자기보호 기능을 마비시킵니다.
고아 출신의 한국 부인과 살고 있는 어떤 외국인은
결혼 직후 아내에게 펀치볼을 사줬답니다.
아내가 너무 참는 게 많아 보여서
순간 순간의 스트레스를 펀치볼에 풀어 버리라구요.
아내의 말에 의하면, 남편의 처방이 무척 도움이 되었다는군요.
펀치볼도 유용했겠지만 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고 지지해 주는
‘한 사람’ 이 생겨서 그랬을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면
‘심리적 고아'처럼 살고 있는 이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나를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는 ‘꼭 한 사람’ 입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꼭 한 사람’이 되어주면
내게도 그런 사람이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