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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선교사역 > 선교 게시판
 
작성일 : 16-11-17 16:11
[국내선교] 2016 선교축제 1 (손창남선교사 편)
 글쓴이 : 강창술
조회 : 2,263  
   2016_선교축제_손창남선교사_편_.hwp (51.0K) [0] DATE : 2016-11-17 16:11:25
2016 선교축제(1일차)
 
일시 2016. 11. 16(수)
말씀 사도행전 11장 19~22절
“19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제목 흩어진 사람들
강사 손창남선교사(OMF 대표)
 
정리 드림교회 강창술장로
 
Ⅰ. 서 론
대구에 오면 자랑거리가 2개 있습니다. 1) 제가 대구에 2년 동안 살았다는 것 입니다. 우리아버지가 미 8군 근무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인천 부평에서 대구 대명동으로 초등학교 5~6학년 영선시장근처에 있는 영선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2) 대구사람들이 반응이 없다는 것 입니다. 제 나름대로 웃겼다고 생각 했는데 아무도 반응이 없어서 제가 강의를 하고도 난처할 때가 많습니다. 제가 웃기는 이야기를 해도 전혀 웃지를 않해서 제가 당황할 때 가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반응안하지 내가 잘못을 했나 아니야 집에 가면 이야기를 한다고 합니다. 제가 웃기는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대구에 한 할머니가 교회를 잘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아침, 점심, 저녁에 항상 커피를 마시고 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어떤분이 물었습니다. 할머니 커피를 왜 그렇게 많이 드십니까? 할머니 왈 “ 그 피로 구속을 받았지 않았나?” 그래서 그 피를 많이 먹어야지... 모두 웃음이 팡 터졌습니다. 이 교회는 반응을 잘 하네요?
 
Ⅱ. 본론
 
저는 1990년부터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사역을 하였습니다. 저는 그때 세무대학교 교수로서 회계학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예수를 영접한 후 대학원 다닐 때 선교의 꿈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학원 다닐 때 사람을 소개 받았습니다. 자매는 중국에 대한 선교의 꿈을 갖고 있어서 소개와 동시에 결혼요청을 하게 되었고 지금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자매에게 결혼할 때 장롱은 예물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선교를 가야 하기 때문에 짐이 많으면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장모님께서 매우 슬프게 생각 했습니다. 처음에는 13평, 그다음은 20평, 그다음은 30평 아파트 평수가 늘어나고 아이들이 1명, 2명 태어나는데 장난감등이 모이니 짐이 점점 더 늘어납니다.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가야 하는데 짐은 늘어나고 교수 8년차 때 나를 하나님은 정말로 선교사를 원하는 것 일까? 의문이 들기 시작 했습니다. 하나님 올해 안으로 사인을 주시지 않으면 그냥 여기서 주저 않겠습니다. 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87년 10월 어느날 저녁에 친구가 와서 내가 이러 이러한 이유로 내가 여기있는데 나는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가려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데 12월까지 안 오면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때 그 친구가 인도네시아 선교사를 알고 있는데 연락을 해보라는 것 입니다. 답변이 지금 인도네시아는 목사비자로는 들어 올 수 없는데 전문인자격으로는 가능하다고 하며 집금 여기에 교수님이 필요하다는 것 입니다. 답변을 읽고 너무나 감사하여 이날을 위해 하나님께서 훈련을 시켰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참여한곳은 인도네시아의 자바섬에 족자카르타 였습니다. 족자카르타는 인구 100만명, 대학이 100개 학생수만 30만명 그곳에 두따와 짜나 대학에서 회계학을 가르쳤습니다. 대학에서는 전공용어를 잘 사용해야하는데 영어외에 인도네시아어로 할 수가 없어서 학생들이 질문을 해도 잘 알아들을수 가 없었습니다. 학기말 시험을 치는데 교수는 주로 이론만 가르치고 실습은 조교가 하는데 어느날 조교가 기말시험에 자기가 하면 안되겠느냐는 것 입니다. 기분이 많이 상했습니다. 그래도 내가 한국에 회계학박사인데 왜그러느나? 물으니 조교가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해보니 “우리는 교수의 말이 무슨뜻인지 도대체 모른다는 것 입니다.” 너무 화가 나서 그 다음날 학장에게 부탁하여 조교를 짜른적이 있습니다. 그 다음날 내게 왜 인도네시아에 왔는가? 그 물음을 자신하게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려 여기까지 와서 학생들과 이런 다툼만 하고 자신을 냉정하게 살피기 시작 했습니다. 언어가 안되니 복음전하기가 너무 어렵고, 복음을 이끌기 위한 대화를 해야 하는데 대화가 안되니 너무나 자신이 작아 보였습니다. 실제로 대학에 교수는 학생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미 잡힌 수족관의 고기와 같습니다. 교수의 영향력은 학생들에게 매우 큽니다. 그런 조건하에서도 내가 이런 모습으로 살고 있으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국 세무대학에서 전도는 너무나 쉬웠습니다. 전도하기위해 제일먼저 질문을 합니다.“ 인생의 목표가 무엇이냐? 대부분학생들은 경제장관, 국세청장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말을 합니다. 두 번째 질문 국세청장이 되면 행복할까? 이 물음에 저는 성경책을 펴 놓고 진짜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내 삶에 진정한 행복이라고 고백합니다. 인도네시아 두따와 짜나 대학에서 강의 할 때 눈여겨 보고 커피를 사겠다 하면 학생들은 너무나 좋아 합니다. 질문을 합니다.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냐? 너무나 쉬운 질문에도 학생들은 너무나 어려운 질문으로 내게 다가 옵니다. 그것은 내가 인도네시아를 잘 못해서 벌어진 상황입니다. 어느날 캠프스에서 나의 소문이 저 교수는 ”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나“ 질문하는 교수로 인식 되었습니다. 인도네시아어를 1년간 열심히 배웠습니다. 가장 쉬운 1학년 학부책을 사서 인도네시아어로 된 회계학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며 차츰 선교사라는 신분을 망각한체 대학교수로서 익수하게 되었습니다.
 
어느날 여름방학을 맞아 해변가로 놀려가게 되었습니다. 재미있게 놀았습니다. 맛 있는 것 도 먹고 사진도 찍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 왔습니다. 사진을 현상해서 식당에 걸어 놓았는데 어느날 딸애가 보고 막 웃습니다. 딸애가 초등2학년인데 선교하려고 여기 왔는데 전도는 안하고 놀려갔다 왔는 사진을 보고 딸애가 웃는 것 입니다. 딸애가 웃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딸애가 나를 보는 인상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살 때 세무대학 앞에 아파트에 111동 910호에 살았습니다.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많았습니다. 910호에 아저씨는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저녁마다 젊은 사람들이 무더기로 왔다가 가는 것을 보면서 의아하게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여자분들에게 무슨말을 할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 때 딸아이 5살 그 애한테 비쳐진 아빠는 학교에 다니는 아빠로 인식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딸애에게 물으면 우리아빠는 학교에 다녀요 그리고 우리 아빠는 학교에서 성경공부를 해요 그래서 동네사람들에게 신대원 다니는 전도사쯤 되겠구나 그렇게 인식되었습니다. 우리딸애한테 비춰지는 것은 인도네시아에 와서 선교사로서 성경공부를 가르쳐야 하고 전도를 해야 하는데 놀려나 다니니 웃음이 나온 것 같애요 평소에 아빠가 아니니 그렇게 느낀 것 같습니다.
 
선교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것은 큰 문제가 아닙니다. 외로움도 그렇게 문제가 안됩니다. 선교사가 가장 힘든 것 은 “아무것도 쓸모 없는 사람이 되는 것” 이 큰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기도 했습니다. 인도네시아에 온 내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어느날 젊은 청년 한분이 찾아와서 교수님 제가 교수님의 조교가 되면 안되겠습니까? 저는 조교를 없앤적이 있어서 저에게는 조교가 없습니다. “두따와 짜나 대학”에는 저 뿐만 아니고 회계학교수는 5명이 더 있습니다. 그런데 학생은 나를 선택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 학생의 목표는 영어였습니다. 영어로 답하고 영어로 공부를 하는 것 제가 바로 영어가 가능하니까?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한명에게 말을 하면 반드시 친구 한명을 더 데리고 옵니다. 전도가 매우 쉽습니다. 맞다 영어로 하면서 성경을 전하자 결심을 한후 그 학생을 대상으로 하기로 하고 대학에서 처음 성경공부반을 만듭니다. 1992년 9월 25일 금요일 첫모임을 했습니다.
 
그 날에 처음 성경 공부한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사도행전 11장 19~21절 말씀입니다. 하면서 하나님의 위로를 많이 받았습니다. 안디옥에서 유대인뿐만 아니라 헬라인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나는 인도네시아에서 복음을 전하여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먼저 8장1~4절 “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 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렵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핍박이었지만 처음으로 죽임을 당하는 순교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데반이 7장 마지막에서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환난가운데 흩여집니다. 11장 19절과 같은 맥락을 하고 있습니다. 8장 3절 “잔멸”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Tistory 라고 하는데 사울과 일행들은 교회를 완전히 사멸하는 것 입니다. 더 이상복구를 못하도록 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방으로 다니면서 기독교인을 죽이고, 감옥에 보내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교회에 기둥을 못 세우게 하는 것 입니다. 9장 1~2절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다메섹까지 가서 사람을 집으로 갑니다. 8장4절에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잡습니다. 즉 이들은 오만데 갑니다. 11장 19절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여기서도 흩어진 사람들은 같은 맥략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러 군데 갔어. 복음을 전합니다. 이것을 우리는 점염성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표현합니다. 점염성은 바이러스를 옮기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바이러스 점염성에 대해서 잘 압니다. 메르서 점염이 된 한사람이 복도에 돌아다니다가 193명에게 2시간 만에 옮긴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점염성은 그만큼 빠르고 강합니다. 그것은 그 안에 바이러스 점염 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로 예수의 바이러스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다니는 곳곳에 복음이 전달되어야 합니다.
 
질문1 전도를 많이 해야 하는 이유를 알면서도 전도를 못하는 이유? 1) 전도폭팔훈련을 못 받아서요. 아닙니다. 기회가 되면 들으십시오. 그것이 조건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예) 설렁탕집에 깍두기가 너무 맛이 있다고 합시다. 사람들은 깍두기대해서 말은 안합니다. 설렁탕집에 대해서 말을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조건이 완벽해서 전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저는 고3때 친구 깸에 빠져 복음을 듣고 교회 나오게 되었습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해 주었다” 이 대목에 저는 너무나 놀랐습니다. 만약 교통법규를 위반 한 사람은 벌금만 내면 탕감을 받습니다. 그러나 죄의 문제는 내가 얼굴이 잘나서 대학을 좋은데 나와서 이런 부분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2) 성경공부를 하면서 “영원한 생명”을 내게 주셨습니다. 또 나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의사들은 사람들의 생명을 몇 년간 연장하기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바치는데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우리의 노력은 너무 미약하지 않나요? 사도바울은 부활이 없으면 가장 불쌍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복음은 우리를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주위사람에게 전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예수를 만 난후 이렇게 변했습니다. 고백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19절 1) 유대인이요 2) 헬라인에 대해서 복음을 전한예가 나옵니다. 잠시 복음에 대한 유대인과 헬라인에 대하여 나누겠습니다. 유대인은 할레를 받았고, 헬라인은 할레를 안 받았고, 유대인은 율법을 알고 헬라인은 율법을 모르고, 유대인은 안식일을 지켰고, 헬라인은 안식일을 안 지킴, 21절 이전에 교회는 유대인에게만 있었지만 21절 이후에는 헬라인에게도 교회가 잇습니다. 안디옥교회를 세운 자는 바울이 아닙니다. 흩어진 사람(즉 평신도)들이 세웠습니다. 처음에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은 자기중심적 사람입니다. 헬라인을 태성 적으로 미워했습니다. 인사도안하고, 식사도 안하며 상종을 아 해 안했습니다. 한국 사람과 비슷합니다. 일본사람을 아예 인간취급을 안하는 것과 같습니다. 한국은 일본의 36년간 식민지 지배를 받았지만 유대인들은 헬라인에게 400년간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습니다. 너무나 어려운 관계 이지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충격입니다.
 
우리어머니는 88세입니다. 일제 강점기때 소학교를 나와 구구단을 일본식으로 외었습니다. 일본사람을 매우 싫어합니다. 그러나 나는 일본사람도 좋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여 일본사람과 사귀기를 원했습니다. 제 나이 37살 선교사로 나가기위해서는 1년 동안 선교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선교훈련센터가 싱가포르에 있는데 모든 훈련생은 싱가포르에서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2개월 동안 훈련을 받는 가운데 일본사람과 한 조가 되어 훈련을 받는데 너무나 좋았습니다. OMF에는 영국 허드슨 테일러가 만들었는데 분위가 영국 분위기가 있어요. 그 가운데 하나가 10시 Tea Time이 있어요. 거기서 차를 맛이며 영어로 나눔을 하는데 나의 행동이 문제였습니다. 묻고 답하는 가운데 내가 예스 하면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그러니 일본사람도 같은 행동을 하게 됩니다. 싱가포르의 자매가 이 행동을 유심히 보다가 한국 사람과 일본사람은 유사한 점이 많네요. 합니다. 그래서 내가 대답을 하기위해 일본은 백제에서 건너가서 등 유사점을 찾고 잇는데 일본사람이 먼저 말을 합니다. “ 한국은 일본에 식민지로 살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 입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피가 거꾸로 올라 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이 헬라인에게 받은 수치는 말할 수가 없습니다. 유대인이 가장 싫어하는 돼지를 성전 안에서 잡고 그 피를 뿌리며 불을 태우는 치욕을 당한 민족이었습니다. 8장 4~6절 “ 4 그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 새 5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그리스도를 백성에게 전파하니 6 무리가 빌립의 말도 듣고 행하는 표적도 보고 한마음으로 그가 하는 말을 따르더라. 여기서 사마리안들은 성전이 “그리신” 산에 재단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안 된다고 믿고 있는데 11장 20절에 와서 안디옥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것을 우리는 “ 상징 빼앗기” 다른 종교의 풍습을 이용합니다. 그 민족이 가지고 있는 풍습을 이용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질문 1) 우리나라에서 “기도” 라는 단어는 불교에서 기독교로 왔습니까? 기독교에서 불교로 갔습니까? 전자입니다. 복음이 들어 온지 100년 밖에 안 되는 기독교문화가 수천 년 되는 불교문화에서 도용된 것 입니다. 제사 문화도 같은 맥락 입니다. 이것이 바로 “상징 빼앗기”입니다. 사도바울이 와서 더 많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그 쪽 문화를 많이 활용합니다. 그 결과 11장 21절에 많은 곳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장소를 파악해보면 흩어진 자들이 전한 지역은 광범위합니다.
1) 베니게 : 수리아(시리아) 서쪽에 있던 고대 국가로 레바논 산맥을 끼고 위치해 있었다. 지금의 레바논 · 시리아 · 이스라엘 북부 등 지중해 동쪽 해안 지대의 고대지명이자 도시 국가이다.
2) 구브로 : ‘구브로’(Kuvpro")/Kûpros/퀴프로스)는 지중해에 있는 섬입니다. 구브로는 길리기아와 시리아 사이에 위치한 매우 비옥하고 쾌적한 섬입니다.
3) 구레네 : 구레네는 지금의 아프리카 리비아 수도인 트라폴리 지방인데 예루살렘에서 상당히 먼 곳입니다.
4) 안디옥 : 현재는 터키 중부의 한 폐허인데, 고대는 소아시아의 비시디아와 브루기아의 경계에 있던 중요 도시이다. 지금의 얄바치 부근의 폐지이다. 흩어진 사람들의 역할은 상당히 먼곳까지 복음을 전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지상명령 이 나타납니다. 지상명령은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할 명령입니다. 낮아져라, 사랑하라, 나누어라, 품어라같은 명령과 차원이 다릅니다. 반드시 이루어 내야 할 사명입니다. 사도바울과 흩어진 사람과의 복음사역은 상당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1) 사도바울 모델
가) 사도행전 11장 22절 이후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에 이방인들에 의한 교회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나바를 보낸다. 그리고 바나바가 사울을 다소에서 데리고 와 함께 사역을 했다. 이들은 요즘 말로 하면 선교사 팀이었다.
나)안디옥 교회 모델
사도행전 13장에서 안디옥 교회가 바나바와 사울을 파송한다.
 
2) 흩어진 사람들의 모델
가) 사도행전 8장과 11장
- 스데반의 순교와 더불어 시작된 핍박을 피해서 도망 간 사람들
-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알아듣게, 헬라 사람들에게 헬라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복음을 전했다.
나) 흩어진 사람들
- 매우 전염성이 있는 사람들
- 타문화적으로 복음을 전한 사람들
- 지상명령에 헌신한 사람들
- 직업을 가지고 다닌 사람들
 
3) 두 모델의 비교
위에서 언급한 사도 모델과 흩어진 사람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선교를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
 
흩어진 사람들의 선교
바울-바나바 팀 선교
선교 주체
모든 성도(사도 이외)
사도
선교 목표
모든 사람
모든 사람+(임금들)
선교지역
모든 지역
제한된 지역의 전략적 선택 (아시아, 마게도냐, 아가야)
조직
자유로움
팀 형태
재정 후원
후원이 필요 없음
후원이 필요함
성취
많은 지역에서 복음화를 이룸
제한적인 성취
파송교회
없음
안디옥 교회
선교 전략
자유로움
팀에서 세움
현지의 수용성
비교적 반발이 적음
반발이 많음
 
흩어진 사람들의 모습은 바로 헌신입니다. 요사히 교회에서는 헌신이라는 단어를 안씁니다. 개인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 사람들은 다름사람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헌신을 요구하면 싫어하고 그 공동체를 떠나버립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 시대에 헌신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매주 토요일 골프광, 매주일 고독을 삼는 낚시광들을 보면 그들은 그곳에서 헌신을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헌신한사람을 광신자합니다. 우리는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한 헌신한사람의 예를 들고 마치겠습니다. 한국에들어와 주일 TV를 보았는데 일요 스페셜 충북대학교 배서철교수 “ DNA연구 위암을 발생한 인자 , 염체색을 연구” 하는데 일생을 바친 예입니다. 한인생을 연장하는데 일평생을 받치는 교수의 열정 헌신을 보면서 “영원한생명을”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열정과 헌신을 보여주고 있는가? 우리는 다시 생각 해보아야 합니다.
 
Ⅲ. 결론
오늘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데 그리스도인의 열정과 헌신을 요구합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는 것 입니다. 그리스도사랑을 전하는 성경에서 말하는 흩어진사람들의 헌신이 드림교회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을 바꿀수가 있습니다.
 
[강사소개] 손창남 선교사는 1954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중에 주님을 만난 후 그의 삶의 목표는 주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이 되었다. 고려대학교, 서울대 대학원, 인하대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 손 선교사는 대학원 재학 당시부터 인도네시아 선교사가 되기 위해 기도했다. 1981년부터 국립세무대학에서 회계학을 가르치며 학원 복음화를 위해서 애쓰던 어느 날 인도네시아 정부가 선교사 비자를 주지는 않지만 대학에서 가르치는 교수 비자는 어렵지 않게 내 주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89년 해외선교훈련원(GMTC)에서 1년 동안 선교 훈련을 받고 1990년 인도네시아로 파송되었다. 손창남 선교사는 인도네시아의 족자카르타에서 회계학을 가르치며 전문인 선교사의 사역을 감당했다. 인도네시아 죠이를 개척하여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제자 훈련에 힘썼다. 현지 리더들을 세워 인도네시아 죠이가 현지인 중심으로 사역할 수 있도록 도왔다.
2001년 한국으로 돌아와 7년 동안 한국 OMF 대표로 섬겼다. 현재는 동원 사역을 감당하고 있으며 동시에 반추하는 실천가(reflective practitioner)로서 강의와 저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인도네시아에서의 사역을 정리한 《족자비안 나이트》와 한국에서의 사역을 정리한 《쏘라비안 나이트》, 전문인 사역과 텐트메이커 등의 혼란스러운 정의를 정리한 《직업과 선교》, 영광스러운 복음을 타문화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노하우가 담긴 《문화와 선교》가 있으며, 제목 자체가 메시지이고 풀뿌리 선교를 통해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한 《사도행전을 선교적으로 읽으면 두 모델이 보인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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