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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4-05 20:14
[국내선교] 3월 선교주일(대구OM지부 총무) 김영신선교사님 설교
 글쓴이 : 강창술
조회 : 2,708  
   아브람언약의 이중구조.hwp (18.0K) [1] DATE : 2010-04-05 20:14:10
   오엠소개의글.hwp (23.5K) [1] DATE : 2010-04-05 20:14:10
3월 선교주일
일시 : 2010년 3월 28일
담당 : 대구지부OM지부
설교 : 김영신(총무)


 

◈ 아브람 언약의 이중구조(복과 책임) ◈

창12:1~4


Introduction : 한국인들은 지나치게 복에 관심과 애착이 많습니다. 그래서 새해가 되면 하는 인사도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라고 합니다. 외국사람들이 새해에 하는 인사가 뭔지 아시지요? “Happy New Year” 라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모두들 복받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고요. 어떤 목사님은 3중 축복에 대해서 말하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네가 간구한노라” 우리가 좋아하는 성경구절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 전능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을 살펴 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아브람에게 복을 주셨을까요?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축복에 담겨져 있는 또다른 의미는 무엇인지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Subject : 아브람은 복을 받을 것이며 모든 족속, 방언 그리고 문화가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 복의 시작이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메시지는 간단히 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복’과 ‘책임’라고 부를 것이다. 복(Top line : 최고선)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그 복을 누릴 뿐 아니라 나아가서 지상의 모든 민족들에게 복이 되어서 그 결과 하나님께 보다 큰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책임(Bottom line : 최저선)입니다.

제가 지난 주에 한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정말로 멋지게 잘 지었습니다. 엄청난 규모의 공사비가 들어 갔다고 하는데, 지금도 은행에 수백억의 대출금이 있다고 하네요. 웅장한 교회건물보고 아 그랬는데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대출이자로 교회의 귀한 재정이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하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회가 지나친 재정압박을 받게 되면 정작 해야 할 일들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복주시는 이유가 바로 책임을 수행하여 하나님이 영광과 존귀를 받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 모든 나라를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은 창세기 12장 1~3절에 처음 나온 이후로 네 번 더 반복되는데 두 번은 아브라함에게, 한번은 이삭에게, 한번은 야곱에게서 나타납니다. 성경의 초반부에 하나님은 이 약속을 다섯 번 되풀이하여 말씀하십니다. 반복을 통하여 그 약속 자체에 초점을 맞추셨고, 성경 처음에 그 약속에 높은 우선권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를 지상 모든 나라에 전하는 것이 우리가 가장 중점을 두어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1)에게 하신 말씀은 최고선인 복과 최저선인 책임이 합쳐져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룬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복주시기 원하시는 마음최고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든 나라에 복주시기 원하시는 마음최저선이라고 합니다. 이 둘이 하나님의 언약, 즉 그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주신 약속은 시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시편의 지상명령이라고 하는 시67편 1~7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사 복을 주시고 그의 얼굴 빛을 우리에게 비추사(셀라2)) 주의 도를 땅 위에, 주의 구원을 모든 나라에게 알리소서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온 백성은 기쁘고 즐겁게 노래할지니 주는 민족들을 공평히 심판하시며 땅 위의 나라들을 다스리실 것임이니이다(셀라) 하나님이여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들이 주를 찬송하게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하게 하소서 땅이 그의 소산을 내어 주었으니 하나님 곧 우리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리니 땅의 모든 끝이 하나님을 경외하리로다”  하나님은 세상 끝까지 복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쌓아 놓으려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하나님은 온 세상을 복음화하시어 그의 최고선인 복과 최저선인 책임의 목적을 이루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불순종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너무 몰두해 있어서 의무를 잊은 채 불순종했고 결국 복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리바람처럼 열국 가운데로 흩어 버렸습니다(슥7:1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주셨던 지상명령(마28:18~20)을 통해 다시금 재조명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지상명령에서도 아브라함의 언약에 나타난 복과 책임의 이중구조가 그대로 잘 나타납니다.

다만 특이한 것은 그 순서가 바뀌어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자기의 제자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에 대한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신 후에 그들이 받게 될 축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내가 현재 임마누엘(God is with us!)의 하나님을 깊이 경험하고 있다면 그분께서는 나의 미래(next step)도 친히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께서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으로 역사하실 것을 믿었기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자신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고서 주님의 지상명령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을 통해 마침내 그 약속이 성취될 것을 계시하셨습니다. 계5:9~10절에 보면,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그리고 계7:9~10절에 보면,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에 잘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마침내 이루실 것입니다.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가정, 교회, 민족)를 엄청나게 축복하신다면, 내가 엄청난 책임을 감당하게 될 때에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 복을 담아둘 커다란 곳간을 만들고 나를 위해서만 사용하려 할 때에는 하나님께서 거두어가실 것입니다. 저는 요즘 한국교회를 보면 좀 염려가 들어요. 너무 건물과 외형을 치장하는 데에 서로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아요.

건물보다는 본질(복을 주신 목적)에 집중하고 다음세대를 키우는 일에 전력투구를 하면 좋겠어요. 조미애자매가 가는 아일랜드는 전세계에서 청소년범죄가 세계5위인 나라입니다. 거기에 가서 영적으로 황폐하고 무너진 유럽에 복음들고 가는데 정말로 기도가 많이 필요합니다. 지금 유럽은 세속주의와 이슬람의 강력한 도전앞에 맥을 못추고 있습니다. 많은 관심과 기도의 지원이 없이는 정말 힘든 곳입니다. 125년전에 한반도는 세계의 땅끝이었습니다. 그때에 우리나라에 와서 사역한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기도하신 “보이지 않는 조선의 마음” 이란 기도문이 있는데 한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Conclusion : 우리가 하는 모든 일과 사역은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전체적인 목표를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그 목표는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모든 방언, 부족, 나라들로부터 사람들을 구속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을 갖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목표나 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계적 차원에서 하시는 일에 우리 삶이 어떻게 도움이 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최고선의 복에는 최저선의 의무가 따라온다는 사실을 잘 담은 찬양곡이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세요? 우리 다 함께 ‘축복의 통로’를 부르면서 아브라함 언약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돌아오게 되리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안에 있는 축복의 통로

  당신을 통하여서 열방이 주께 예배하게 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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